글: 최지현
내 외할머님은 예나 지금이나 참 요리를 잘하신다. 늘 부엌에 서서 분주히 움직이시며 쉴틈 없는 재빠른 손길이 부단히 오가고, 바깥에 있는 인간한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베일에 가려서 (보고 있자니)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는 마법을 부리고 나면, 어떠한 재료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음직스럽게 바뀐다. 전해듣기로는 예로부터 음식 솜씨가 훌륭하다고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하다고 하셨고, 다수의 일관된 증언을 확보할 수 있는 점으로 미루어 생각할 때 그저 입 발린 칭찬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할머님께서 특히 잘 하시는 음식이 불고기다. 명절이든 당신의 생신 날이든, 당신께서 아끼는 손주가 찾아오면 언제고 변치 않는 푸근한 미소로 반겨주시며 맛깔나는 반찬들을 그릇에 넘칠 만큼 그득그득 차려서 한상 가득 내어주시곤 하셨다. 당신도 분명 시장하실 터인데 그런 것은 내색도 않으시고, 밥 생각이 없으시다며 한사코 내 몫까지 먹으라고 덜어주면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염치도 모른 채 사양하지 않고 아귀아귀 먹었더랬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식당에서 파는 불고기를 먹을 때도 쉬이 무엇인가 아쉽고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고, 소위 말하는 맛집이라는 곳에서 먹어보더라도 내가 알던 기억 속의 그 맛과는 비교하기가 힘든 것이다. 무엇보다 기억이 부여하는 '인상'에 값어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나의 어머니도 그런 솜씨를 물려받았는지(?) 불고기를 요리하는 솜씨가 줄잡아서 보통은 넘는 것 같지만, 만드시는 수고에 죄송스럽게도 역시나 할머니의 그 솜씨에는 못 미친다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변함없이, 눈 앞의 밥상에 불고기가 오를 때마다, 나는 누구에게나 친근하면서 편안한, 인정이 많고 선하신 할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빠듯한 살림에 하나하나 아이들을 뒷바라지 하시기까지 말 못할 고생을 하셨고 그만큼 희생도 많으셨던, 이 나라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분. 젊으셔서는 기운이 정정하고, 머리도 동네 미용실 아주머니의 손길이 닿은 파마 머리의, 고불거리는 기운을 곱게 간직한 억세고 풍성한 머릿결을 자랑하셨던 그분께서, 이제는 얼핏 봐서는 몰라볼 만큼 희끗희끗 세고 등허리가 굽으셨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그분의 낭군과 함께, 일평생 자식들 걱정에 고생만 하신 내 할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안쓰러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암만 생각해봐도 내게 주신 그분의 사랑을 돌려드릴 길이 없다. ㅡ 매 순간순간, 심지어는 지금도 나는 다른 누군가의 덕택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어쩌면 목숨을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내가 체험한 티끌을 전부로 착각하고 살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 우리에게 통째 짐지워 준 방대한 무게다. 그리고 흔히 '무게'라 함은 곧 부자유(스러움)를 뜻한다는 것이 시중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세상 이치는 또 그렇지만은 않고, 짊어진 짐의 무게에 따라서 그에 걸맞는 힘과 인내가 생겨나기도 한다는 것을 적지 않은 경험들이 실증하고 있다.
「숙명」이라는 이름의 연극에서 내게 주어진 배역은 그저 현재를 견디는 것뿐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는 견지에서는 그렇다.
집에서 불고기를 먹었다, 씹으면서 조금 목이 메었다
그런데 내가 삼킨 것은 불고기 뿐이었을까 어쩌면 할머니가 세대를 뛰어넘어 전해주신 사랑의 의미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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