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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수많은 '나'의 이야기/Inside_나로 시작된 '어떤' 이야기

[수필] 고시원의 악몽

by 이아당 2020. 12. 13.

글: 최지현

 

몹시도 눈이 부신 강렬한 광채 앞에서, 흡사 면전으로 날아드는 불덩이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듯이, 나는 반쯤 굽혀진 팔을 쳐들어 눈을 가렸다. 흡사 햇볕이 내리쬐는 물가에서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바닥 없는 물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먼 발치서 내가 그토록 바라고 갈구하던 어떤 것이 보인다. 애타게 손을 뻗지만, 그 모습은 나에게서 멀어지고, 점차 사라진다. 나는 그대로 꿈 속을 헤맨다. 바람도, 별도 없는 하염없는 시간 속에서….


문득 눈이 떠졌다. 아침이라고 느꼈다. 내 배꼽이 그렇게 소리지르고 있었기에. 뻐근한 목을 누르며 나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리고 신음한다. 저절로 눈꺼풀을 치켜든 내 눈앞에는, 상체를 일으킨 내 머리에서 정면으로 네 뼘 정도 떨어진 거리에 보푸라기가 일어난, 색바랜 MDF로 짜여진 방문이 있고, 옆으로는 한치도 채 안 되는 거리에 군데군데 패이고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흰 벽이 펼쳐지고 있다.


좀이 슨 듯한 딱딱한 매트리스와 벽에 낑겨서 팔이 온통 배긴다. 나는 열심히 팔을 주무르며, 추위와 피곤으로 마비된 머리를 굴리려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쓰면서, 부옇게 떠오르는 지나간 시간의 풍경들을, 하나 둘씩 미지라는 심연으로부터 소환해 낸다.


2019년 1월 모일. 나는 부산의 한 고시원에서 3일차 아침을 맞고 있다. 엊그제 나는 심한 독감 으로 인해 말 그대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터였다.


체감상 39도를 넘나드는 고열이 오르고, 목구멍 깊숙이부터 거칠게 끓어오르는 가래를 싣고 터져나오는 기침 속에서, 나는 내가 품고 있던 원대한 꿈과 희망도 함께 토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팔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거진 광증에 가까운 일시적 착란 증세에서 비롯된 여러 이상 증상들을 보이는 가운데, 지옥의 침상에나 어울릴 듯한 침대에 쪽 뻗은 채 나는 금년도 새해 벽두를 그야말로 왼종일 뜬소리를 지껄이며 보냈었다. 내가 일종의 환각에서 벗어나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각으로, 신년의 초하룻날을 막 넘기고난 시점이었다. ㅡ 내 기억은 작년의 마지막 밤을 끝으로, 24시간 남짓한 공백을 남긴 채 단절 되어 있었다. 지난 달 말경(그러니까 작년 12월 말) 나는 후쿠오카에서 출발한 부산행 여객선에서 저녁 여섯 시 정도에 몸을 부려놓고 부산 시내 한 대학 근처의 망해가는 고시원에서 첫 숙소를 잡았다. 전에 화제가 됐던 서울의 고시원 화재 사건 이후에 발의된, 소방법 개정안으로 인한 시설 투자부담 가중에 더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경영난으로 정말 그곳은 폐업 일보직전의 상황이었다.


첫날, 남자 총무에게 전화를 하고 방에 짐을 풀었을 때, 나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때 귀국 첫날부터 값비싼 호텔에 묵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적 만족감과, 비바람을 피할 한달 간의 거처를 얻었다는 지불한 비용의 저렴함을 상기하면서 적잖이 만족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ㅡ 귀국 직전부터 인터넷을 뒤지면서 휴대전화로 바삐 손품을 판 대가로 절약할 수 있었 던, 최소 수십 봉지 이상의 라면으로 환산될, 미래에 나의 일용할 식량이 되어 육체의 건강과 안녕에 이바지하리라 예상되는 통장 속의 약 십여 포기 남짓한 배춧잎들을 떠올리면서, 알 듯모를 듯 나는 은은하게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 뒤로 펼쳐질 비극을 예상조차 하지 못한 채.


우선 내가 가장 먼저 맞닥뜨려야 했던 재난은 그 방에 일체의 침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불은 커녕 무거운 머리를 뉘일 베개조차도 갖춰져 있지 않아, 그 대신 최대한 두께가 두껍고 단단한 책을 몇 권 뒤통수에 괸 채, 고국에 돌아온 이래로 흡사 악몽과도 같은 첫날 밤을, 야속한 문 틈으로 끊임없이 새어들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받으면서 지새워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다행스럽게도 둘째 날부터, 대각선 방향에 문이 열려진 채로 있던 빈 방의 한구석에 버려진 신문 뭉치를, 자신의 헐벗은 초라한 표면을 덮을 수 있는 무언가의 존재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던, 차라리 만들다 말았다고 부르면 더 좋을 듯한 허름한 침대 위로 조달해 올 수있었다).


나는 이 고시원에 발을 디딘 지 이틀이 되던 날, 그 해의 최저 온도에 가깝게 내려갔던 날로 기억한다, 추위로 바들바들 떨리는 턱을 한 손으로 간신히 부여잡은 채, 나에게 열쇠를 건네주고 서명을 받아간 이래로 코빼기도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내가 이 곳에서 유일하게 얼굴을 알고 있는 남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ㅡ 그는, 내가 추측하기로 빌어먹을 휴대폰이 부르르 떨어서 신체 일부분에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을 전달하기 전에는, 그러니까 다이얼이 울리고 나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제깍 연락을 받는 법이 없었다. ㅡ 나는 간밤에 추위로 인해 때 이른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어야 했던 것에 대해 다소곳이 항의했고, 나의 인도주 의적이고 정당한, 그리고 지극히 소박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불평에 대해서, 총무는 이런 곳은 원래 다 그런 법이라는 취지의 ㅡ 누가 봐도 몹시 귀찮음이 묻어나는 ㅡ 느르께한 빈정거림으로 간단하게 답했다. 아마도 그것은 결코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고시원의 현 상황을 가리킨 말이었으리라.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그때 나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몸뚱이 가릴 한 장의 담요조차 없는 상황에서, 누가 봐도 귀차니즘 때문에 대충 치워 넘기려는 그런 날림스런 설명에 수긍했던 것일까. 시간이 지나고 나는 물론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3년 된 대만제 노트북 앞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ㅡ나는 지금 이 기억을 술회하면서 격렬한 분노를 느낀다.


공사로 인해 잠을 잘 수가 없게 됐던 지경이었던 넷째 날, 나는 이 공간을 주재하고 전권을 휘두르고 있는 몹시도 두려운, 다시 강조한다, 무시무시한 그 사장이라는 자와 협상을 시도했다. 수차례에 이어진 항의 끝에 나의 집요함에 지쳐서 나가 떨어진 총무가 간신히 다리를 놓아주었 지만, 주인 되는 분의 그 목이 아프다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한사코 전화 통화를 거부했기에 나는 오로지 서면으로만 그와 대화할 수 있었다. ㅡ결론부터 말해서, 나는 입실하면서 낸 17만원 중에 2만원을 돌려받았다. 그러나 이 보잘것없는 수기를 작성하고 있는 내 손의 기꺼운 노고를 생각해서든지, 혹은, 아무리 작은 신체 일부분의 지체라도 어여삐 여기는 휴머니즘에 찬 박애 주의를 위해서나 불행하게도 이 기록을 읽게 될 여러분의 최소 한도의 편의를 위해서나, 한번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불필요하게 길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나는, 알렉산드로스가 그 순간만큼은 부럽지 않은 위대한 승리자의 태도로 자못 뽐내듯이 득의 양양해 하며, 빙빙 돌고, 춤추고, 공중에 키스하고, 노래하고, 알라신을 부르고, 쉽게 말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꼴불견에 가까운 작태는 다 보여가면서, 리듬체조 선수 저리 가라는 자세로두 다리를 펄쩍이며 환호작약했다(벌써 사흘은 물기의 흔적이 닿지 않은 듯한, 머리가 떡이 진가엾은 한 젊은 재소자가, 종잇장처럼 얇디얇은 간막이 벽을 두드리면서, 옆방에서, 몹시 간절 하게 자그마한 배려를 읍소하고 있는 듯한 실로 사소하다고 할 만한 징후는, 그만 기뻐 날뛰는 발소리에 묻혀 공기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가 내 은행 계좌번호를 되뇌이며 울상을 한 모습을 상상하기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천군만마보다 우렁찬 천사들의 군대가, 조물주의 존함을 소리 높이 부르짖으며 "호산나"를 영송하고, 회백색의 칙칙한 천장이 쩍, 기찬 소리를 내고 대차게 쪼개지면서 마치 영광의 뿔나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것은 살아서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기까지 거쳐야 했던 수많은 싸움 중에 전초전에 불과했으나, 고투 끝에 첫 번째로 얻은 나의 작은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