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3 [수필] 열차에서 2: 묘한 독서 글: 최지현 전차에 올라타 빼곡이 들어찬 좌석들 한가 운데 간신히 자리 하나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 나는, 까닭 없는, 십여 분 남짓한 공상에서 깨어난 끝에 무릎팍에 고이 모셔둔 책장을 아무렇게나 펼친다. 그러나, 본디 예상과는 달리 나는 하나도 글줄에 정신을 집중할수 없다. 머리 뒤편의 창문에서 떨어지는 빛과 음영의 조화가 내 정신을 온통 앗아가버린 것이다. 신비스러운 창공이 던져 준 이묘한 블라인드는 오른쪽 지면, 위쪽 삼분의일 지점에서 조용히 계류돼 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내 감각의 중심을 형성 하고 있는 묵지근한 사념의 후위로부터, 시선의 최전방에 문득문득 등장하는 이 명멸 하는 조각들은 차츰 중첩, 분리되고 이반하며 뒤얽히면서, 이 세상에서 눈뜬 이래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신비한 기하학적 패.. 2020. 12. 13. [수필] 고시원의 악몽 글: 최지현 몹시도 눈이 부신 강렬한 광채 앞에서, 흡사 면전으로 날아드는 불덩이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듯이, 나는 반쯤 굽혀진 팔을 쳐들어 눈을 가렸다. 흡사 햇볕이 내리쬐는 물가에서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바닥 없는 물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먼 발치서 내가 그토록 바라고 갈구하던 어떤 것이 보인다. 애타게 손을 뻗지만, 그 모습은 나에게서 멀어지고, 점차 사라진다. 나는 그대로 꿈 속을 헤맨다. 바람도, 별도 없는 하염없는 시간 속에서…. 문득 눈이 떠졌다. 아침이라고 느꼈다. 내 배꼽이 그렇게 소리지르고 있었기에. 뻐근한 목을 누르며 나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리고 신음한다. 저절로 눈꺼풀을 치켜든 내 눈앞에는, 상체를 일으킨 내 머리에서 정면으로 네 뼘 정도 떨어진 거리에.. 2020. 12. 13. [수필] 불고기 글: 최지현 내 외할머님은 예나 지금이나 참 요리를 잘하신다. 늘 부엌에 서서 분주히 움직이시며 쉴틈 없는 재빠른 손길이 부단히 오가고, 바깥에 있는 인간한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베일에 가려서 (보고 있자니)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는 마법을 부리고 나면, 어떠한 재료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음직스럽게 바뀐다. 전해듣기로는 예로부터 음식 솜씨가 훌륭하다고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하다고 하셨고, 다수의 일관된 증언을 확보할 수 있는 점으로 미루어 생각할 때 그저 입 발린 칭찬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할머님께서 특히 잘 하시는 음식이 불고기다. 명절이든 당신의 생신 날이든, 당신께서 아끼는 손주가 찾아오면 언제고 변치 않는 푸근한 미소로 반겨주시며 맛깔나는 반찬들을 그릇에 넘칠 만큼 그득그득 차려서 한.. 2020. 12.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