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활동가집단 공감인
공감인은 공감의 경험을 통해 마음이 건강한 사회를 만듭니다.
www.gonggamin.org
글: 최지현
몇달 전, 웹진 전체의 아웃라인을 짜면서 공감인에 대한 글을 써줄 사람이 있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일고의 여지도 없이 하겠노라고 자청했다. 그만큼 지난 1년 간의 시간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공감인과 인연을 맺었던 건 2019년 중순이다. 나는 2020년 들어서 몇 차례 가량 공감인에서 활동가로 참여해 왔다. 올 한 해 동안 청년재단의 '체인지업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던 만큼, 양쪽에서 기존에 알던 사람들을 만날 일이 꽤 잦았다.
체인지업을 같이 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우선 놀랐던 것은 공감인의 프로그램에 대해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어졌다는 것이다. 원래 다수를 대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라면 "그냥 그저 그랬어."같이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한 이도 저도 아닌 반응들도 존재하기 마련인 반면, 어떤 분들에게는 공감인은 유독 '힘들었다. 왜 간 건지 모르겠다.' 같은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보였다.
그런 몇 가지 오해들에 대해 조금의 섭섭함도 없었다면 분명 거짓말이다. 치유활동가의 일원으로 공감인 프로그램을 준비해 본 입장으로서, 컨텐츠의 구성과 진행에 다른 분들이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지하 1층에 있는 공감룸에 들어가게 되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은 치유활동가다. 그들은 한마디로 정체불명의 '신기한 사람들'이었다. 이분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지? 공감인 직원일까? 왜 우리들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는 걸까? 저분들은 과연 뒤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그리고 무엇보다, 대체 왜 이렇게 친절한 거지? 내가 공감인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감정이 떠오른다. 나는 지각을 해서 도중에 참여를 했는데, 당시에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셨던 활동가 P 선생님이 동화책을 읽어주고 계셨다. 우리가 초등학생 때 읽었을 법할 예쁜 그림책이었다.
그 날 주어진 차례가 끝날 무렵에, P 선생님은 이야기 말미에서 자기 발음이 어린애 같다고 놀리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다고 말했다. 그치만 나한테는 그 사실이 무척 의외로 느껴졌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동화책을 고른 것은 과거로 가는 문을 열기 위한 의식이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만난다는 것. 그때는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것. 좋아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들. 그런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었다.
공감인 사이트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표어가 있다. [치유활동가 집단 공감인]. 나는 공감인의 핵심이 이 문구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치유활동가는 비전문가다. 학위나 전문 지식보다 “공감의 힘을 익힌” 사람들이다. “타인의 진심 어린 공감을 통해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이 스스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치유 릴레이‘를 실현한다.” 공감인의 최종 목표는 이것이다.
그간 치유활동가로 활동하면서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 참여자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분들이 떠오른다. 내가 활동가 교육을 마치고 처음 실전에 투입(?)됐을 때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나와주셨던 L 선생님. ‘나편’ 마지막 회차 때 투고받은 사연을 낭독하면서 인상적인 시연을 보여주신 J님. 그리고 익명으로 가족관계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을 써서 보내주신 이름 모를 어떤 분까지. 나한테 치유와 공감의 귀감이 되어 주신 선배와 동료 활동가 분들도 빼놓을 수 없다. 턱없이 능력이 부족한 가운데 여러 활동들에 참여하면서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만났던 모든 분들이 내 스승이었다.
뚝섬역 6번 출구로 나와서, 모를 꺾어, 성수문화회관 옆을 지나가는 골목은 이제 내게 무척 익숙한 길이다. 처음 보는 이들 앞에서 자기 속을 털어놓고, 어쩌면 더 이상 숨죽이지 않고 마음껏 울 수 있는 기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길. 동시에 가슴 깊은 곳에 뜨거운 불씨를 지닌, 나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돌아볼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내가 만난 모든 참여자 분들이 정말 활동가들의 뜻한 바대로 ‘치유’를 경험하셨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 땅 어디에든지,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신다면 감사하기가 정말 한량없을 것 같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귀중한 이야기를 들려준 ‘나편’ 소그룹 조원들, ‘속마음 산책’에 참여해 준 화자 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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