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시기
글: 이주
사회적으로 나를 지칭할 말이 사라진 지 1년, 관계를 맺지 않은 지 6개월,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은 좋았다. 조금씩 내 꺼풀들을 벗겨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상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상담 선생님은 나의 상황을 열심히 들어주시겠지만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상담으로도 해결 못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솔직해지자면 수치스러웠다. 나는 마음이 아파서 방에 있는 게 아닌데. 변명거리가 없어 부끄러웠다. 나로서는 나를 마땅히 설명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이즈음 도서관에서 소설을 찾다가 ‘은둔형 외톨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그동안의 답답한 마음에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을까 책들을 뒤적였다. 그때의 나는 공감의 글은 필요하지 않았다. 어설픈 위로보다는 명확한 내 상태와 방도를 설명해주길 바랐다. 가장 적절해 보이는 책을 골라 들고 집에 왔다.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가 가장 궁금했다. 평범하게, 적당히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과 나는 도대체 어느 부분이 달랐던 걸까. 이 책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은 먼저 은둔형 외톨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며 시작한다. 넓게 보아서는 집에서 혼자 지내는 모든 사람이 은둔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들 모두를 은둔형 외톨이라 부르긴 어렵다. 따라서 6개월 이상 집에 은둔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하며 이 '은둔 상태'를 빠져나가고 싶은 사람을 은둔형 외톨이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은둔하는 청년들은 왜 생기게 되었을까? 저자는 현대사회로 들어서며 가치관의 다양화로 인한 개인의 매몰, 개인적 특성으로는 사회불안, 인간관계의 악화, 혹은 가족관계로부터 비롯한 모자 일체화 등을 원인으로 든다.
“그러나 일본 사회처럼 일정한 성숙을 이룬 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아가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의미 있는 이유를 찾아 나가고, 또한 살아가고자 하는 동기 부여를 모색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삶이 지닌 본능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이것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인간을 출현시키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112p
다양한 원인에 대해 읽으며 그동안 내가 나 스스로에게서만 이유를 찾아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 인생은 나의 책임이니까, 내가 계속 실패를 경험한 건 내 능력이 부족했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는 반복해서 이런 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이 상황의 원인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그런 나이기에 스스로 나아가게 할 능력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내가 못나서만이 아니라 세상이 좀 퍽퍽하고 어려워서 그런 마음이 생겼겠다는 깨달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앞서 은둔의 원인으로 꼽히는 모자 일체화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에서 말하는 모자 일체화란 대부분의 은둔형 외톨이에게 보이는 양상으로 부모(특히 어머니)와 자식이 상호의존관계에 빠져있는 상태를 말한다. 부모는 자식이 걱정되어 위하려는 마음에, 자식은 그 안락함에 젖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기회를 잃는 것이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적잖이 충격이었다. 나는 엄마와 나의 끈끈한 관계가 좋은 일이고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제자리에 머물러있는 것이 이 한 가지 때문은 아니겠지만 나아가길 주저하고 선택을 미뤄온 행동들에 부모님의 그늘이 작용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무직인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서 무슨 소리를 들으면 어떡하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점점 외출을 하지 않게 되었고, 집에서만 은둔하게 되었습니다. 2년간 아무 곳에도 외출하지 않고 거의 집에서만 지낸 후, 어떻게 하든지 스스로 이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55p
책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은 다양한 사례들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도, 더 힘든 사람도, 은둔을 시작한 각자의 계기와 상황들이 소개되어있다. 이 덕분에 모두가 존중받는 느낌을 들었다. 특히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례를 읽을 땐 더욱 위로가 되었다.
저자는 사례와 분석에서 나아가 당사자는 어떻게 상황을 바꾸고 현재의 상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주위의 가족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그중 한 방법이 스타벅스처럼 각자의 할 일로 서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카페에 가는 것으로 방 밖으로의 한 걸음을 내딛는 방법이다. 더불어 의료 및 상담 기관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은둔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보다도 먼저 인정하는 부분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같은 소용돌이 안에 있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말하고 있다는 느낌에 나도 내 상태를 덤덤히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내가 이렇게 행동했었나, 그런 부분이 내게 힘든 마음을 만들었겠구나 하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게 했다.
또 은둔하는 많은 청년의 입장에서 대변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당사자가 읽기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사자를 이해하고자 하는 주변인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은둔 기간에는 가족관계가 유일한 인간관계였는데 나의 상태를 이해해주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 주고 싶지 않아 꺼내기 어려운 말들이 있었다. 그런 속마음들이 차분한 목소리로 쓰여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주변인들이 은둔하는 당사자를 이해하고 대하기 수월하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은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분명히 은둔하고 있지만, 은둔형 외톨이의 시기를 일종의 ‘참고 기다림의 시기’로서 긍정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 시간을 낭비로 보거나, 쓸데없는 짓을 하는 시간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1p
외딴 섬 같은 시간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견뎌내고 있는 이 순간도 가치 있는 순간이라는 마음을 갖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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