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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문 밖으로 내딛는 첫 걸음, 그리고…/예술 소모임 활동기

[음악 소모임 리뷰]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건

by 이아당 2020. 12. 13.

글: 이밤

 

2020년 7월 10일 금요일 낮 12시 문밖을 나선다. 3호선 지하철을 타고 동호대교를 지나 약수역에서 내린다. 10 번 출구에서 나와 빵 가게 옆 골목을 돌아 걷다 보면 빌딩이 나온다. ‘음악 학원 간판은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는데 이곳이 맞나? 아니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망설인 끝에 회색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린다. 문이 열리자 따뜻한 조명과 초록색 식물들로 가득한 공간이 나타났다! 잔뜩 긴장 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어서 와요. 만나서 반가워요.”


앞으로 이곳에서 격주 금요일 오후 1시 30분마다 음악 소모임이 열린다. 피아노 교습 1시간, 보컬 연습 2시간.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설레서 두근두근해졌다.

 


1. 내가 피아노를 배우는 이유


피아노 의자에 앉는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워 몸을 바르게 하고, 팔과 손은 가볍게 건반 위에 둔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악보를 보고 건반을 누른다. 도도솔솔라 라솔. “잘했어요” 선생님께서 칭찬을 해준다. 고작 다섯 손가락 움직이는 간단한 악보인데도 손과 머리가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다. 생각이 많은 날에는 눈앞의 악보가 안보인다. 그저 콩나물만 가득할 뿐이다. ‘왜 자꾸 틀리지?


틀리고 싶지 않은데, 잘해서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데...’ 마음이 조급해져서 습관처럼 채찍을 휘두르면 선생님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린다. “괜찮아요. 이 부분은 일부러 헷갈리게 해 놓은 거예요. 이 마디만 다시 반복해서 쳐볼까요?” 미솔레솔미솔레미도미도 “잘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다시 쳐볼까요?” 그렇게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왼손연습, 오른손연습, 양손연습을 하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틀리지 않고 열 손가락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생겼다. 피아노에 집중하고 나니 복잡한 생각들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초등학생 때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엘下까지 배우다가 집안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 돈을 벌면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다짐했지만, 삶에 여유가 없어서 어린 시절의 꿈을 잊고 살았다.


올해 초에 혼자 극장에 가서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을 보았다. 배 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 위에서 살아온 천재 피아니스트의 이야기였다. 배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 같았다. 폭풍우가 치는 밤, 서 있는 것조차 힘든 배 안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Magic waltz'를 즐겁게 연주하는 주인공이 행복해 보였다. 청년체인지업 프로젝트 시작 후, 피아노를 배울 수있다는 안내를 받은 즉시 참여 의사를 표현했다.


그렇게나 배우고 싶던 피아노였는데도, 수업에 종종 늦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싫은 날들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씻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모든 순간이 버거웠다. 오늘은 못 가겠다고 문자를 보낼까 망설이다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문밖으로 나가기만 하면이 무거운 감정에서 해소되는 경험을 나는 몇 번이나 경험했다. 그래서 오늘도 문을 열고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디 딘다.

 

 

 

(20200710)

 

노래를 부르기 전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하는 방법부터 배웠다. 어깨를 펴서 가슴을 열고, 입술을 풀고, 광대를 올려서 웃으며 소리를 냈다. 경직된 몸이 풀리고 가벼워졌다. 앞으로 호흡과 발성, 주변의 소리를 듣고 조화를 만드는 연습을 계속할 거라고 했다. 선생님께서 우리끼리만큼은 틀려도 괜찮으니까 자신 있게 보여주는 모임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20200724)

 

지난 시간에 이어 복식 호흡과 발성 연습을 했다. 공기반,소리반이 노래할 때 성대가 다치지 않는 발성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풍선을 불며 아랫배를 당겼다. 풍선에서 공기가 빠지는 속도를 조절하면서 숨을 천천히 끝까지 내쉬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각자 가지고 있던 음색을 찾아주었다.

 

(2020087)

 

좋아하는 곡을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 나누었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공감되는 노랫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추천 곡 LIST

When I look at you-Miely Cyrus

High School Sensation-WWhale

The Rose-Westlife

미아-박정현

This Is Me (영화 위대한 쇼맨’ OST)-Kesha

물 만난 물고기-악동뮤지션

안아줘-정준일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Nakashima Mika,

 

 

(20200918유리상자-아름다운세상-작은 가슴 가슴 마다 고운 사랑 모아 우리 함께 만들어가요 아름다운 세상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어 중단되었던 대면 모임을 다시 시작했다. 오늘의 모임 인원은 총 4.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그동안 호흡과 발성 연습만 하다가 드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20201011) 어반자카파-그대 고운 내 사랑♬ - 잊었던 희망의 노래가 새록새록 솟고

 

모임이 매주 일요일로 변경되었고 새로운 분들이 들어왔다. ‘두두두로 발음하면서 리듬을 파악한 후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르는 연습을 했다. 남녀듀엣곡이어서 파트를 구분해서 부르는 새로운 경험을 해서 즐거웠다.

 

(20201018) 김동률-출발♬ -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수가 있을지

 

피아노 반주 소리가 듣기 좋았다. 자주 듣던 노래가 새롭게 느껴졌다.

목의 힘을 빼고, 호흡을 바람에 실어 보내며 가볍게 노래 부르는 연습을 했다.

 

(20201025) 옥상달빛-수고했어,오늘도♬ -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화음을 쌓는 연습을 했다. 혼자 부를 때는 괜찮았는데, 함께 부르면 계속 다른 사람의 음을 따라 부르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참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다.

 

(20201101)

 

그동안 불렀던 4곡의 노래들을 복습했다. 각자 노래하기 힘든 부분을 선생님께서 1:1로 교정해주었다.

공명감 있는 소리와 안 올라가던 고음을 낼 수 있게 되었다.

 

(20201108일) 처진 달팽이(유재석&이)-) 말하는 대로♬ -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러나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 속 작은 이야기

 

유재석의 랩을 한 명이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서, 각자 돌아가면서 불러보았다. 누가 랩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노래처럼 들려서 신기했다.

 

(20201115) 이적-걱정 말아요 그대♬ -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무대에 서는 날짜가 정해지니 긴장이 되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도망가고 싶어졌다. 선생님께서 책임감을 함께 나누어 갖자고 했다. 모임에 참여한 기간이 모두 다르니, 그동안 각자 성장한 만큼만 책임지는 무대를 목표로 하면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20201122) 에일리-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 언젠가 만날 우리 가장 행복할 그날 첫눈처럼 내가 가겠다.

 

무대에 서서 노래할 때 선생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연습을 했다.

내가 떨릴 때는 나를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의 눈을 보는 거예요. 나를 떨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사람.”

 

(20201129)

 

그동안 배웠던 7곡의 노래를 복습하고, 합창할 곡의 순서를 함께 정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남들 앞에서 멋지게 노래 부르고 싶다는 목적 하나로 음악 소모임에 신청했 었습니다. 누군가는 사회불안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크지만 인정받을 자신이 없기에 생기는 간극에서 오는 불안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마음속으로는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지만, 남들이 진정한 나를 알게 되면 실망할까 두려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목표였지만 다른 참여자 분들과 함께 화음을 맞춰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제 머릿속에 타인의 존재가 흐릿해지기 시작 했습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기에 만들었던 가상의 인물들은 사라지고 정말 내 옆에서 함께 노래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거기에 따른 불안은 사라지고 즐거움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제 목소리가 궁금해졌고 제 목소리를 찾고 싶었고 제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노래를 배운 것을 넘어 저 자신을 찾을 수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송이


사실 저는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남들 앞에서 노래 하는 게 부끄럽지만 해보고 싶은 것중 하나였습니다. 처음엔 부끄러웠지 만, 점점 크게 목소리 내는 저를 발견할 수 있어서 기뻤고 노래 지도를 받을 수 있어서 새롭고 좋은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 MJ

 

자유롭고 분위기, 따뜻한 분위기에서 배울수 있어서 매우 좋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 요. 제가 이렇게 많은 곡을 배웠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고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에 기쁩니다. 제 취향의 곡들이라 아주 좋았습니다. 평소 노래를 좋아해서 저에 게는 너무 가치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 다. - 다솜


저는 무기력하고 낯가림도 심하고 언제나 새로운 시도가 두려웠습니다. 음악소모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노래를 하면 지적만 받고 눈총과 수군거리던 기억들이 떠올랐지만 충동적으로 신청을 했습니다. 모임을 처음 시작하는 날까지도 계속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노래할 생각에 긴장되고 떨려서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했지만, 한순간의 충동이었다 해도 노래 하고 싶다는 제 마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연습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걱정했던 것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선생님의 친절하고 세심한 가르침에 마음이 놓여서 빠지지 않고 끝까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배운 노래들이 지친 날 위로가 되었고, 다시 걸어나갈 수 있게 손내미는 듯해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의욕이 생기고 더 잘 부르고 싶다는 욕심이 났습니다. 무대 공포증도 심해서 남은 시간이 걱정되지만, 처음에 두려워했는데도 끝까지 모임에 참여한 것처럼 이왕이면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해내고 싶습니다. - 다빈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보살피지 못했고 오히려 핍박받던 나의 목소리가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받기 시작하니 나의 또 다른 ‘용기’ 로 자라났다. ‘모습’으로 샘솟았다. 음악 소모임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 아이의 생기와 또렷함도 날로 커진다. 경이롭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행복과 즐거움을 준 시간들. 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일은 전 세계를 통틀어 오직 ‘나’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이 말의 따스함과 숭고함에 이제야 다가선다. 천천히, 낮은 숨을 뱉으며.

- 홍진


어쩌다 보니 끝까지 남아서 이렇게 무대 공연까지 준비하게 됐지만, 처음엔 그저 궁금증 또는 호기심에서 참여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공연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 저는 불과 두서너 달 전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자신과 함께 서 있습니다. 지금도 두렵긴 하지만, 다시 그 친구가 주눅이 들려고 할 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스스 로를 다독입니다. 잘하고 못하고 같은 건 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정말 필요한 것은, 실은 그렇지 않은데 이렇다, 저렇다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임을 말입니다. - 지현


여름부터 겨울까지 생각해보면 꽤 오랫동안 음악 모임을 했네요. 아쉬운 게 좀 많은 것 같아요. 새로운 분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게 긴장되기도 했고, 합창반주가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할 때마다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코로나 때문에 피아노 레슨은 중단이 되고, 합창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는데 그러다가 오지 않게 된 분들도 생각이 나네요. 내가 하는 반주에 맞춰서 다들 노래를 하는 것, 같이 맞춰 가는 것이 즐거웠어요. 혼자서 피아노를 칠 때와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우리가 연습했던 곡들이 마음에 위로를 주는 곡들이라 좋았습니다. - 피아노 선생님_몽글


‘한 번만 더 오고 싶게 하자. 한 번만 더 가보자. 그게 쌓이면 어느새 마지막 순간이 되어 있을 거다’.
음악 소모임을 시작하며 참가자들에게 했던 말이자, 스스로 되뇌인 말입니다. 이 마음이 모여 어느새 오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죠. 참가자들도 그랬겠지만, 저도 왠지 힘들어 주저앉고 싶고, 쉬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되뇌었던 '한 번만 더'는 지친 제게 힘을 주는 말이었고, 서로를 다독이는 말이었습니다. 소모임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한 말, ' 한 번만 더' 가 서로의 마음에 남아 어떤 일이든지 해내는 우리들의 모습을 자랑하게 될 날을 꿈꿔 봅니다. - 합창 선생님_정지은